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평양 전투 (문단 편집) ===== [[징비록(드라마)|징비록]] ===== 징비록에서는 1차와 2차 그리고 4차 평양성 전투를 다루었다. 1차 평양성 전투는 20화 후반과 21화 초반에 짧게 다루었다. 선조가 평양을 떠난 이후 방어를 맡아 윤두수와 김명원과 이원익 그리고 임세록을 영접하기 위해 남은 류성룡이 평양성에 남아있는다. 당시 류성룡은 임세록을 통해 요동 주둔 명나라 군대를 몇명만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이들을 평양성에 배치시켜 일본군이 명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류성룡은 윤두수에게 양해를 구해 임세록을 만나러 평양성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조선군은 밤을 이용해 고니시 군을 기습한다. 당시 감시원으로부터 반협박과 압력을 받던 고니시는 즉시 반격을 명하고 기습에 성공한 조선군은 후퇴를 한다. 그런데 고니시 군은 이들을 뒤쫓았고 결국 조선군은 후퇴하면서 왕성탄을 통해 도하하는 길을 알려주고 만다. 이를 본 고니시는 조선군이 길을 안내해 줬다면서 기뻐한다. 결국 고니시 군은 왕성탄을 통해 도하를 하였고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져버려 일본군은 무혈입성하여 평양성에 보관중인 군량 10만석도 확보한다. 대체로 고니시 군에 대한 조선군의 기습 장면을 짧게 다루었으며 내레이션과 함께 고니시 군의 무혈 입성과 군량 확보 장면을 보여주었다. 2차 평양성 전투는 24화에서 다루었다. 한달 동안 조승훈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않자 이원익이 찾아가 공격을 요구하고 이에 조승훈은 차를 즐기면서 도망갈 시간을 주었던 것 뿐이며 이제 적을 공격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군사들을 이끌고 간다. 한편, 평양성에 주둔하던 고니시 군은 풍토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매우 적었다. 이에 고니시는 조승훈의 공명심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조승훈을 성 안으로 유인시키려 한다. 류성룡은 신명철과 이천리를 데리고 급히 조승훈과 이원익에게 와서는 매복 가능성을 말하였고 이에 조승훈은 척후병들을 보내 백성들을 데려온다. 백성들은 일본군이 철수하였음을 말하였지만 류성룡은 확실히 확인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승훈은 이를 거부하며 이원익과 조선군을 빼고 명나라 군대를 단독으로 이끌고 평양성으로 들어간다. 평양성으로 들어간 조승훈은 백성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들어온다. 하지만 조승훈에게 일본군이 없다고 말한 것은 순왜들이었고 일본군에 협력한 백성들은 성문에서 명나라군대를 환영하다 이내 갑자기 달아났고 명나라 군대가 당황하는 순간 일본군이 기습을 한다. 결국 명나라 군대는 맥없이 무너지며 [[사유(명나라)|사유]]를 포함한 수많은 명나라 군사들이 전사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히며 [[불랑기포]] 등의 무기를 빼앗긴채 조승훈은 간신히 빠져나온다. 대체적으로 불멸보다는 좀 더 역사적으로 비슷하게 묘사하였으나 조선 쪽 정찰 부대의 실책을 삭제하고 명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게다가 이때 조선군을 이끌고 참전한 김명원도 나오지 않는다. 이후 3차 평양성 전투는 나오지 않다가 이여송과 조승훈이 4만의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넘으면서 4차 평양성 전투가 다루어진다. 4차 평양성 전투가 29회 후반에 주로 다루었고 30회 초반에 마무리 부분을 다루었다. 평안도 도체절사로 있던 류성룡은 평양성 전투에 앞서 순왜로서 일본군에 협조하던 김순량을 포함한 전령들을 처형하여 일본군의 정보를 끊어버린다. 이후 류성룡과 이일 그리고 김명원이 이여송과 더불어 명나라 군대에게 평양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평양성의 방비가 강화되지 않은 보고까지 올라오자 공격을 요청한다. 이때, 이여송은 심유경이 만력제로부터 허락을 얻어 회담을 하자고 한 것처럼 속여 평양성 근처에 있는 역원인 부산원으로 유인하여 고니시를 생포할 계략을 세운다. 전령을 받은 고니시는 군량과 군마 부족 상황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기쁨에 찼지만 함정의 가능성이 있어 자신이 먼저 살피겠다는 소 요시토시의 요청에 그를 먼저 보낸다. 결국 작전은 실패를 하였고 소 요시토시는 이일에게 생포될 뻔한 위기에서 부장들과 일부 군사들만 간신히 데리고 도망을 친다. 평양성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승병 2천을 이끌고 온 유정 대사를 반갑게 맞이하던 류성룡과 이여송은 이천리로부터 작전 실패 보고를 받자 급히 공격 준비에 나선다. 한편, 여유롭게 요시토시의 보고를 기다리던 고니시는 간신히 살아 돌아온 요시토시로부터 진실을 듣자 자신이 속은 것에 격노하며 황해도 봉사에 주둔 중인 오토모 요시무네에게 지원 요청을 하면서 전투 태세를 명한다. 이후 조명 연합군 5만은 외성과 외성 앞에 설치된 목책에서 전투 태세를 갖춘 일본군을 맞이하였고 드디어 이여송의 명과 함께 전투를 시작한다. 우선 조선군의 총통과 명나라군의 불랑기포들이 대대적인 포격을 가하고 포격과 활 세례의 지원하에 조명 연합군이 공격을 한다. 이에 고니시 군도 노획한 총통 등과 조총으로 저항을 하며 전투는 격렬해진다. 그러나 이여송의 계략으로 모란봉에서 조승훈의 미끼 부대에 걸린 일본군은 그들을 추격했다 기습을 당해 전력 중 일부를 상실하고 밤새도록 포격과 활 세례를 퍼붓는 조명 연합군의 물량에 밀려 무너지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 평양성의 내성 관문인 칠성문이 뚫리면서 성의 대부분이 조명 연합군에게 점령된다. 이에 고니시는 풍월정 근처에 만들어 두었던 토굴로 병력들을 모아서 게릴라전으로 대항한다. 결국 명나라군은 일본군의 게릴라 전술로 피해가 늘어나자 퇴로를 열어주게 된다. 이에 류성룡은 반발하지만 모든 군권이 이여송에게 주어지고 조선군도 명나라군 소속으로 된 탓에 아무 말도 못하고 이시언과 김경로에게 고니시군의 퇴로 주변에 매복하여 고니시를 생포하라 한다. 하지만 이여송의 문책을 두려워하던 김경로가 군을 철수하면서 고니시를 생포할려는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고 이시언만이 고니시군을 습격하여 일부 일본군들을 포로로 잡는다. 결국 고니시 군은 평양성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하지만 전투로 엄청난 사상자를 낸 상태에서 조선군의 습격도 받고 탈영병들과 중상자들을 버리며 간신히 철수했기에 사실상 괴멸 상태에 빠진다. 부산진성 전투와 함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였다. 협소한 세트장과 겨울이 아닌 여름의 배경, 적은 인원, CG와 맞지 않는 실사 장면과 포탄이 터지는 등의 문제[* 하지만 터지는 포탄의 경우 멋을 위해 고증을 어느 정도 덜 지켰다고 볼 수도 있다.'''이 정도 고증 오류까지 따지면 거의 다큐 수준이 된다''']가 있지만 [[화력덕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시원한 포격 장면과 조명 연합군이 돌격하는 CG의 높은 퀄리티, 기존의 횡포만 부리고 무능한 명군에서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진 명군의 모습, 제대로 살려낸 전투의 분위기 등 '''여러모로 [[진주 대첩]]이나 [[탄금대 전투]]보다 잘 찍었다는 평이 많다.''' 무엇보다도 불멸의 이순신에서 다루지 않은 육상 전투에 집중하겠다는 제작 의도로 내세운 전투들 중에서 불멸에서 확실히 잘 다루어지지 않던 4차 평양성 전투를 다루어내며 제작 의도를 충실히 따랐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다만 명군 묘사가 제대로 된건 이 전투 장면 뿐 이다. 이 전투 전후로는 명군에 대해 철저한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